이용자 서평


212. (있는 그대로) 참 소중한 너라서 - 작성자 : 이상은 (산림학과)  | 2017-09-18
위로와 더불어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이다
211. “지혜로운 바보’가 되자!”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주지하듯, 오늘날의 정치,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유 자체를 착취하는 매우 효율적이고 영리한 시스템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목적에서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표면상 신자유주의는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개인은 그 자유를 향유할 수가 없다. 개인의 자유를 통해 실현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자유다. 개인의 자유는 자본에 “자동적인” 주체성을 부여하며 이로써 자본의 능동적 번식을 추동한다. 개인은 자본에 종속되어 있을 뿐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역설적으로 개인은 자유를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종속되어 갈 뿐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경영자로 만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타자에 착취당하는 노동 계급을 철폐한다. 오늘날은 모두가 자기 자신이 기업에 고용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노동자다. 즉,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모두가 주인인 동시에 노예인 셈이다. 계급투쟁 역시 자기 자신과의 내적투쟁으로 탈바꿈한다. 요컨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혁명이 자본가와 노동자를 구분하고 계급투쟁을 추동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그 패러다임을 허물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사회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바로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지배 질서의 특별한 영리함이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 타자 착취의 질서 속에서는 착취당하는 자들이 연대하고 함께 착취자에 맞서 봉기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연대는 일시적이고 토대가 약하다. 신자유주의는 각각의 개인을 타자화, 원자화시키면서 그들의 연대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킨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정교하고 눈에 쉽게 띄지 않기 때문에 감지되지 않거나 감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각 개인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흔들거나 균열을 일으킬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또한 정치적 개념의 시민을 경제적 개념의 소비자로 만든다. 여기에서 시민의 자유는 소비자의 수동성으로 대체된다. 오늘날 정치의 소비자가 된 유권자는 정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 즉,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가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했다. 그들은 공동의 정치적 행동을 할 의지와 능력도 같이 상실했다. 따라서 단지 수동적으로 반응할 따름이다. 시민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소비자와 똑같다. 때에 따라 소비하거나 소비를 하지 않듯,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 참여는 일회적인 수동적 사건으로 그치고 만다. 오늘날의 정치는 한마디로 ‘디지털 심리정치’고 규정된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수동적 감시의 단계에서 능동적 조종의 단계로 전진하는 중이며, 이로써 우리를 더 깊은 자유의 위기 속으로 빠뜨린다. 자유 의지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 대표적으로 ‘빅 데이터’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꺾는다. 빅 데이터는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닌 개별 주체가 아닌 미리 계산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디지털 심리정치는 자유로운 결정의 부정성을 사실 관계의 긍정성으로 변모시킨다. 인간 자체가 긍정화되어 양화하고 측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이 된다. 근대의 권력은 규율권력이었다. 미셸 푸코가 명징하게 정식화했듯이, 근대의 권력은 허용이 아니라 부정적인 금지의 형태로 구현된다. 반면 오늘날의 권력은 한마디로 스마트 권력이다. 권력은 크면 클수록 더 조용히 작동한다. 그리고 점점 더 허용적 형식을 취해간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섬세하고 유연하며 스마트한 형태를 취하며, 결국 사람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따라서 예속된 주체는 자신이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아니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스마트 권력은 예속된 주체의 의지에 정면으로 반하기보다는 그들의 의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종한다. 스마트 권력은 개인을 금지하는 대신 조종한다. 규율권력이 인간의 몸을 훈육하고 처벌하고 교화하는데 치중했다면 신자유주의 권력은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는 점점 더 세련된 자기 착취의 형식을 고안해내면서 끝없는 자아 최적화와 효율성 향상을 약속한다. 자아를 최적화하라는 신자유주의 명령은 시스템 내에서 완벽하게 기능하라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성과 성과의 제고를 위해 심리적 억압, 약점, 실수 같은 것은 “치료를 통해 제거”(killing through healing)되어야 한다. 끝없는 최적화의 명령은 고통마저 착취한다. 신자유주의적 권력 기술은 부정적인 규율적 강제를 행사하지 않는다. 억압하기보다는 호감을 사고 욕구를 채워주려고 애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권력 기술은 금지하고 방지하고 억압하기보다, 이미 예측하고 허용하고 기획한다. 소비는 억제되지 않고 극대화된다. 결핍이 아니라 과잉, 즉 과도한 긍정성이 생성된다. 그래서 개인은 불가능해 보이는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피로’해진다. 예전에는 개인의 욕구가 억압되면 오늘날에는 더욱 장려되고 활성화된다. 규율사회에서는 개인의 감정 혹은 기분을 억제하고 합리성을 추구한다. 반면 신자유주의 체제는 생산성과 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분이라는 자원을 동원한다. 기분은 자유로운 주체성의 표현으로 환영받는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성을 착취한다. 구매를 충동하는 자극을 늘리고 더 많은 욕구를 생성하기 위해서 기분을 동원한다.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의 본령은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감시와 통제다. 반면 오늘날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빅 데이터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통제가 가능해졌다. 파놉티콘은 원근법적 시각에 묶여 있기 때문에 수감자들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감시는 시점이 없기 때문에 모든 각도에서의 감시를 가능하게 한다. 사각지대가 제거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개인을 조명하고 감시하는 주체는 외부의 빅브라더가 아니라 개인 자신이다. 디지털화된 웹 상에서의 주체는 자기 자신의 파놉티콘이다. “모든 클릭은 흔적을 남긴다”는 경구가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무서운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모든 클릭, 우리가 입력하는 모든 검색어는 저장된다. 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보는 관찰되고 기록된다. 우리의 디지털 습관은 우리의 인격, 우리의 영혼을 매우 정확하게 재현한다. 디지털 습관을 통한 재현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보다 더 정확하고 완벽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수많은 개인의 디지털 습관의 결정체가 바로 ‘빅 데이터’다. 빅 데이터를 통해 우리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망을 읽어낼 수도 있다. 개인의 행동 더 나아가 집단의 행동 패턴을 드러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는 심리학적 프로그래밍과 제어를 통해 지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는 통치술이다. 따라서 자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은 탈심리학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기술은 예속화의 매체인 심리정치를 무장해체시킨다. 주체는 탈심리화되고 비워진다. 이로써 아직 이름이 없는 삶의 형식을 위한 자유가 생겨난다. 삶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바보가 되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표현 방식, 새로운 언어, 새로운 사유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오직 바보만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에 접근할 수 있다. 백치 상태 속에서 사유는 모든 예속화와 심리화에서 이탈하는 사건과 유일무이한 것으로 이루어진 내재성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보만이 기존의 사유 체제를 거스를 수 있다. 하지만 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화와 총체적 커뮤니케이션은 순응의 압박을 증가시킨다. 즉, 바보가 되지 말라고 한다. 동시에 자유의 실천을 억제한다. 본질적으로 바보는 묶여있지 않은 자, 네트워크에 낚이지 않는/않은 자, 정보가 없는 자다. 바보는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외부 공간에 거주한다. 특히 지혜로운 바보는 완전히 다른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그는 수평적인 차원을 넘어, 단순히 정보화되고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상태를 넘어, 더 고차원적인 영역으로 상승한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에 그는 사건들, 미래에서 온 신호를 예민하게 수신한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지능’이 아니라 ‘지혜’다. 지능은 어원상 ‘사이에서의 고르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지능은 시스템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사이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지능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선택지들 사이에서의 선택을 강요할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지혜’다. 그것도 다름 아닌 바보 같은 지혜말이다. “우리 모두 지혜로운 바보가 되자!”
210. 미국을 만든 책: ‘신화’에서 ‘역사’로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오늘은 책 이야기다. 책 제목은 ‘미국을 만든 책 25’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토마스 포스터다. 먼저 책 제목이 상당히 도발적이다. 이 책의 원명을 살펴보면, ‘Twenty-Five Books That Shaped America’다. 정관사가 붙지 않았다. 만일 정관사가 붙었더라면 미국을 만든 25권으로 획정되지만, 정관사가 붙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목록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목록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목록을 살펴보면 그의 선택에 수긍을 하게 된다. 『미국을 만든 책 25』는 ‘미국 탄생 후 집필 된 책 가운데 미국이 형성되는데 영향을 끼친 문학작품’으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지면상 25권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몇 권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벤저민 플랭클린의 『플랭클린 자서전』이다. 위험함을 무릅쓰고 이야기하면, 『플랭클린 자서전』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처세술 관련 서적이다. 이 책의 체제는 일반적인 자서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자서전은 보통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집필되기에 읽을 때 상당한 리얼리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경계한다. 즉 이 책에서는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아니 경계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대신 방점을 책이 전하는 내용, 교훈에 두고 있다. 주지하듯 플랭클린은 미국의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물’(self-made man)이자 미국 실용주의의 ‘아이콘’이다. 그는 윤리학의 추상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도덕의 합리적이고 즉각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13가지 덕목, 즉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소,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용적인 덕목이자 그의 실용주의의 핵심 교의다. 한 덕목을 지키면 다른 덕목을 지키는데 훨씬 쉽고 이 모든 덕목을 지키면 성공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체다. 플랭클린은 제대로 된 정규교육은 못 받았지만 근면함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독학을 했고, 나중에는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고 미국 건국에도 기여해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화폐의 모델이 되는 영광도 누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 숲으로 갔다. 오로지 인생의 본질적 사실들만 대면하고, 인생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고, 또 내가 죽을 때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동굴에 모여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재결성할 때의 선언 문구이기도 하다. 이 구절은 소로가 인생관을 함축하고 있다. 즉 그는 단순명료한 삶을 강조하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에 의해 실은 우리가 소유당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만, 소유욕, 욕망 등이 아주 해로운 효과를 미친다고 설파한다. 소로가 현실적인 욕망을 떨쳐내고 숲 속에서 성취한 것은 ‘현대적’ 생활의 치장과 장식을 모두 걷어내고 ‘단순한 삶’(simple life)이다. 소로의 말과 행동이 예거하듯, 때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하고, 울림이 가장 크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문학은 ‘BW’와 ‘AW’, 즉 before Whitman과 after Whitman으로 나뉜다. 미국문학과 미국시는 바로 휘트먼 덕분에 현재의 모습과 소리를 갖추게 되었다. 그 정도로 휘트먼이 미국문학에 드리운 그림자는 깊고 짙다. 좀 심하게 말하면, 휘트먼 이전 미국문학은 유행이 뒤떨어진 영국문학과 다름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에머슨, 롱펠로, 브라이언트 등은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따랐다. 그러나 1855년은 휘트먼의 『풀잎』으로 미국문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다. 『풀잎』이후 미국문학과 미국인은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휘트먼은 미국인이 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저자에 따르면, 휘트먼은 미국인을 “개방적이고,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을 할 줄 알고, 자신감에 넘치고, 미래 지향적이고, 두려움 없고, 소란스럽고, 논쟁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휘트먼은 미국의 국민시민이라고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오늘날 미국 문학, 조금 좁혀서 말하자면 미국 소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를 꼽으라면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F.S. 피트제럴드, 윌리엄 포크너를 들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여기까지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목록에 한 명 더 추가하라면 고민을 하게 되고, 논란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헨리 제임스를 꼽을 것 같고, 어떤 사람은 허먼 멜빌이나 너새니얼 호손, 또는 에드가 앨런 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작가가 미국 문학, 미국소설의 대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트웨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대표작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피츠제럴드나 T.S. 엘리엇도 동의했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사회비평과 풍자가 있는 두 친구의 모험이다. 만약 이것이 영화였다면 ‘우정’을 핵심으로 하는 두 남자 친구의 사회적 모험담, 즉 ‘버디 영화’(buddy movie)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 헉은 거의 모든 것을 조롱한다. 지나친 가족 간의 의리, 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음, 미국의 인종차별, 행상인과 사기꾼과 그들의 피해자, 카스트 제도, 톰 소여가 좋아할 만한 모험, 종교, 기존의 도덕, 규칙 등을 비웃는다. 특히 규칙을 조롱한다.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일인칭 시점을 사용한다. 따라서 주인공 또는 주인공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인물에 대한 핵심 사항은 독자가 화자보다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는 점이다. 젊은이의 세상 인식과 독자들이 완벽하게 파악하는 외부 현실 사이의 괴리는 아이러니를 낳고, 그 아이러니는 다시 사회적 비평은 풍자, 애수를 가져온다. 예컨대 헉과 짐은 사실 여행 초기부터 자유의 몸이었는데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다. 만일 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의 모험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 작품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가장 커다란 성취는 사투리와 속어 표현을 마음껏 쓰면서도 ‘진지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헉 이전에 사투리는 저급한 코미디, 저급한 계층, 저급한 수준 등 ‘저급’의 등록상표였다. 흑인을 조롱하는 ‘흑인 분장 쇼’(minstrel show)에서처럼, 사투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을 조롱하기 위해 쓰였다. 트웨인은 사투리가 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트웨인을 통해 ‘지방색’ 문학이 태동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트웨인은 문학 작품에 사용되는 언어가 반드시 ‘문학적 언어’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미국문학은 그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 1900년 이후의 미국 문학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 소설은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포크너 네 명이 주도했다. 희곡은 손턴 와일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가 대표했다. 시는 한 명이 주도했는데, 그 시인은 바로 로버트 프로스트다. 프로스트는 일상적 소재를 택해 ‘쉬운’(plain) 구어체의 시어를 구사하며 엄격한 운율의 구조를 구축했다. 프로스트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일상적인 자연을 시적 소재로 택했다. 워즈워스는 “시는 강렬한 감정의 자연발생적인 넘쳐흐름”으로 규정했다. 즉 워즈워스의 말에 따르면, 시는 의도되거나 계획된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프로스트의 시에서 주목할 사항은 그의 시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스트의 시는 형식과 운율 면에서 ‘전통’, 즉 영국의 낭만주의 이전의 형식과 운율을 따르고 있다. 또한 그는 일반적인 평가처럼 단순히 자연시인이 아니다. 시인 스스로도 ‘자연시인’이라는 호칭에 반대했다. 그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관조와 명상뿐만 아니라, 신이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라는 측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의 관심은 자연보다는 자연 속 인간에 집중된다. 또한 그의 시는 선악의 양면을 갖고 있기에 어느 한쪽 면, 일반적으로는 밝은 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프로스트 시 읽기의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프로스트는 쉬운 언어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또 그 쉬운 시에 생명, 죽음, 광기, 온전한 정신, 결혼의 불화, 자연과의 갈등, 신과의 갈등, 우리 자신과의 갈등 등 존재의 모든 주제를 담았다. 그는 미국인들, 미국인들의 정체성, 국가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로스트의 시집은 ‘왜 우리는 싸우는가’라는 문고판 시리즈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의 시는 참전 병사들의 시대와 장소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이 땅과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연관 관계를 규명하고, 그들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방식으로 조국을 껴안았다. 프로스트가 말년에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 자작시를 낭송한 게 우연은 아니다. 프로스트에게 ‘미국의 국민시인’이라는 칭호는 단순히 노시인에 대한 예우 차원의 ‘수사’가 아니라,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진정한 사랑과 존경의 ‘헌사’라 할 수 있다. 『미국을 만든 책 25』에서 저자는 그 기준을 미국의 신화를 알려주는 책으로 설정했다. 그러면서 신화를 미국인 자신, 미국의 능력, 미국의 가치, 미국의 관심사, 미국의 가장 소중한 원칙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신화로 그치지 않고 역사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단지 미국의 이야기로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을 만든 책 25’라는 목록을 개인적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당연히 그 목록은 획정된 것이 아니다. 계속 변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변해야 한다. 또 그 목록이 문학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자신만의 목록, 예컨대, ‘나를 만든 25권의 책 또는 영화’와 같은 목록을 만들어보자.
209. 들뢰즈, 모든 것을 다 거부한 긍정주의자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프랑스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영문학자인 장-자크 르세르클은 언어 철학과 문학 이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특히 그는 난해하다고 악명이 높은 들뢰즈 철학을 ‘언어’를 매개체로 일관되게 연구해왔는데, 『들뢰즈와 언어』(Deleuze and Language, 2002; 이현숙 ․ 하수정 공역, 그린비, 2016)는 그 산물이다. 옮긴이의 설명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일관된 자료가 부재한 들뢰즈 언어의 복잡한 차원을 세분화하고 이를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주지하듯 들뢰즈는 구조주의 등 1960년대 서구 근대이성의 재검토라는 큰 흐름 속에서 철학사에 대한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서구의 양대 지적 전통인 경험론과 관념론이라는 사고의 기초형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들뢰즈의 이런 철학적 검토는 그의 언어학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들뢰즈는 언어(학)를 불신한다. 그의 언어에 대한 불신은 자신의 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베르그송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르그송은 구조주의에 반대하고 구조주의의 실증주의적 전통에 의해 무시되었던 철학자들을 부활시켰다. 베르그송의 후예로서 들뢰즈 또한 언어에 대해 상당히 ‘불신’했고, 그에 병행하는 ‘망상’을 동시에 택했다. 들뢰즈가 언어학을 반대하고 불신한다고 해서 모든 언어학을 반대하고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가 반대하고 불신한 것은 구조주의 언어학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소쉬르에 의해 시작되어 20세기 전반 언어학을 지배했던 언어철학 및 연구방법론이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하나의 체계, 즉 ‘구조’로 존재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문법 요소보다는 요소 간의 관계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즉 한마디로 구조주의 언어학은 기표와 기의의 안정적 관계를 중시한다. 반면 들뢰즈는 이를 부정한다. 대신 그는 언어의 중심에서 이탈하려는 명확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학에서 기표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재현과 해석에 근거한 언어의 개념을 지향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들뢰즈는 기표와 기의뿐만 아니라 ‘메타포’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반감의 태도를 견지한다. 왜냐하면 메타포는 궁극적으로 언어의 보편성과 추상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구조주의 언어학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주의 언어학이 언어에 부과하는 꽉 짜인 규율이 자연어의 작용에 빈약하고 혹은 종종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의 중요 기능을 ‘정보 전달’과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언어를 다루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추상과 보편이라는 한계를 가진 채 ‘언어학의 건축학’이라는 형식화로 귀결된다. 반면 들뢰즈는 언어학을 ‘지도제작’과 비슷하다고 파악한다. 즉 건축학에서는 건축의 각각의 요소가 독립적인 중요성을 갖지만, 지도제작에서 각각의 요소는 그 자체로는 중요성을 갖지 못하고 오직 전체적인 ‘맥락’에서만 중요성을 획득한다. 다시 말하면 들뢰즈의 언어학에서 언어는 하나의 면으로 간주될 뿐이고, 서로 다른 면들이 혼효되고 새로운 맥락을 형성할 때야 비로소 유의미하다. 이처럼 들뢰즈는 언어의 보편성과 추상성보다는 언어의 이질성과 다양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들뢰즈는 구조주의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와 상반되는 영미화용론과 하버마스의 소통철학에도 반대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영미화용론의 경우에는 너무나 많은 개념을 차용한다는 점이 문제고, 소통철학의 경우에는 소통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의 과잉이 문제다. 다시 말하면 들뢰즈는 언어의 본질에 있어서 소통 행위나 문답과 대화를 강조하는 소통이론도 반대하고, 방법론적 개인주의, 이상주의적 의미 이론, 대화적인 상식과 보편적인 윤리적 격률에의 보편적 의존을 바탕으로 하는 영미화용론도 반대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런 반어학적인 전회의 결과는 칸트적 용어로 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칸트 철학과도 거리를 둔다. 요컨대 들뢰즈는 어떤 특정한 철학적 사조나 철학적 경향을 반대한다기보다는 사고의 틀을 가두는 형식 또는 구조와 그것의 추상화와 보편화를 경계한다. 바로 이점이 들뢰즈 언어학, 더 나아가 들뢰즈 철학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들뢰즈는 구조주의 언어학을 불신한다. 또한 그는 촘스키의 유물론적 언어학도 거부한다. 촘스키는 인간은 유한한 규칙에 따라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러한 규칙을 수학적인 엄밀성으로 정식화하려 한다. 들뢰즈는 대신 ‘의미의 존재론적 혼합’, 혹은 ‘특이성들의 분포적인 내재면을 추구하는 선들의 존재론적 혼합’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들뢰즈의 언어철학의 중심에는 ‘텍스트의 규칙 파괴적 창조성’이 위치한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지향점은 푸코와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들뢰즈 자신도 푸코 철학을 어느 정도 환영했다. 왜냐하면 푸코 철학의 본령은 들뢰즈와 마찬가지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푸코는 ‘근대적 이성’을 비판하고, 역사주의 방식, 다시 말하면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권력’이라는 문제에 접근했다. 그리고 푸코는 권력이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오히려 탈중심적이라고 파악했다. 푸코에 따르면, 고전 시대에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존재를 사회적으로 배제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았다. 반면 근대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존재를 교육,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학교, 병원, 교도소 등과 같은 훈육기관은 근대의 대표적 산물이다. 이곳에서는 ‘지식’과 ‘인간’이 몸과 성을 관리한다. 근대의 권력의 전략은 사회 질서를 훼손하는 사람들을 배제 또는 격리하거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근대 권력은 사회질서를 훼손하는 인간을 정상인으로 복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푸코의 권력을 들뢰즈의 언어로 바꾸어도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근대 권력이 인간을 제어하고 훈육한다는 푸코의 주장과 구조주의를 비롯한 언어학이 인간의 언어를 추상과 보편의 한계에 가두었다는 들뢰즈의 주장은 공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들뢰즈 철학과 푸코 철학이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다. 푸코의 철학적 본령이 ‘차이’의 부정이라면, 들뢰즈 철학의 본령은 ‘차이’의 긍정이라는 점에서 둘의 철학적 지향점은 대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들뢰즈의 철학적 방점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성’에 찍힌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들뢰즈는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도 거부하지 않은 긍정주의자’로 규정될 수 있다. 들뢰즈는 기존의 언어학을 불신하고 반대하는 동시에 새로운 언어학을 제안한다. 그의 언어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언어를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다. 즉 그의 언어비판은 무엇보다 보편적 문법 개념에 근거한 ‘과학적 언어학’의 형식에 대한 비판이지 언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의 새로운 언어학은 ‘다른 언어철학’, ‘새로운 화용론’으로 명명된다.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화용론은 언어의 ‘의도’와 ‘소통’에 방점을 두는 화용론이 아니라 언어의 ‘힘’을 강조하는 화용론이다. 들뢰즈의 언어 철학적 관심은 언어가 가진 ‘힘’과 ‘흥미’다. 그에 따르면,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은 힘들의 표현이며, 그들과 상호작용하는 주체들은 ‘힘들의 차이적인 요소들’이다. 결국 힘은 서로 충돌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철학적 입장에서 보면 명제의 의미는 진리를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참신함이나 흥미로움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는 진리를 대체한다. 들뢰즈가 주류 언어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감화되지 않으면서 언어의 재구성 단위로 삼는 것은 개별적인 화자와 개별적인 발화가 아닌 언표의 ‘집단적 배치’고, 이는 ‘기계’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즉 그의 언어철학에서 기계가 주류 언어학의 구조를 대신한다. 기계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기계가 역학의 의미, 물질성의 의미, 사회적 실천으로서 언어의 중요성의 의미, 그리고 체계의 추상적인 관념성에 대립되는 언어의 구체적인 ‘작용’과 ‘기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기계적 개념은 ‘배치’의 개념으로 확장 발전한다. 배치는 능동적 과정이며, ‘메타포’(은유)가 아닌 ‘메타모르포시스’(변형)이다. 배치를 구성하는 것은 사물과 사건의 상태, 과정과 결과의 두 의미에서 언표와 언표행위, 욕망이 순환하는 영토로서의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의 운동,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다. 이 가운데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는 들뢰즈의 언어학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들뢰즈 철학의 핵심어다. 탈영토화란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 재영토화는 다시 중심으로 향하는 운동으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탈영토화는 다시 상대적 탈영화토화와 절대적 탈영토화로 구분된다. 절대적 탈영토화란 상대적 탈영토화의 물꼬를 트는 반시대적 역능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의 언어학에서 배치는 항상 욕망의 기계적 배치와 언표의 집단적 배치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배치가 새로운 화용론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기표의 제국주의를 탈피하고 주체를 제거했다는 점 때문이다. 새로운 화용론에서 언어의 배치는 수직적이거나 위계화 되어 있지 않고 합류하고 교차하는 평행한 두 면 위의 흐름의 형식 속에서 전개된다. 결국 들뢰즈에게 있어, 언어의 핵심적인 문제는 ‘단어 또는 발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보다는, ‘발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이 어떤 배치에 삽입되었는가’, ‘언표의 집단적 배치의 일부로서 그것이 어떻게 욕망의 기계적 배치에 연결될 것인가’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들뢰즈의 언어 철학은 재현이 아닌 기능, 로고스가 아닌 신체, 기호가 아닌 절단, 기호화가 아닌 강도이며 주체가 아닌 배치, 정보가 아닌 힘으로 나타난다. 들뢰즈의 철학적 관심사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이고, 수직적 위계가 아니라 수평적 분산이다. 또한 자기중심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 그리고 소수자이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소수자 문학’ 혹은 ‘문학적 소수화’를 지향한다. 그는 문학적 소수화를 ‘스타일’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언어가 이질적이고 변주되는 실재라면, 스타일은 언어의 각각의 요소들을 택하여 그것을 연속적 변이에 복속시켜 새로운 언어학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추출하는 것이다. 언어를 그 한계까지 밀어붙여 더 이상 언어적이지 않은 무엇까지 끌어당기는 것 역시 스타일을 통해서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스타일을 통해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비평을 수행하고 예술가로서의 개별화의 가능성을 타진해야한다. 즉 스타일은 예술가 자신의 독창적이고 근본적이고 차이적인 세계관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가 생각하기에, 위대한 예술가 혹은 철학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스타일은 들뢰즈를 평생 사로잡았던 문제로서 그의 언어철학 최고의 긴장 지점에 위치한다. 옮긴이의 설명처럼, 스타일은 철학자로서 창조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평생 스타일에 천착한 들뢰즈는 창조적 파괴를 추구한 긍정주의 예술가 혹은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언어학을 과학으로 한정시켰다. 그들은 언어를 체계 또는 구조로 파악하며 언어의 동질성과 균형을 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언어는 세계를 재현하는 도구와 다름없다. 반면 들뢰즈는 언어학을 철학, 문학, 더 나아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따라서 들뢰즈 언어학에서 언어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통해 무한히 변주되어 이질성과 다양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또한 언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불균형은 혼란 또는 혼동과 같은 부정적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는 외부와의 소통 속에서 흐름과 차이, 그리고 그것들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긍정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언어의 새로운 의미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으로 발전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긍정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긍정주의자다.
208. 평범하고 일상적인 셰익스피어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문학사를 넘어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문학사적 업적에 비해서 그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충분치 않은 기록조차도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실제 작가였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영화 <위대한 비밀>(Anonymous, 2011)). 하지만 현재 셰익스피어 학자들 중 가장 저명한 인물 중 한 명인 스티븐 그린블랫은 그런 논란을 일축하고 『세계를 향한 의지』(Will in the World, 2004; 박소현 옮김, 민음사, 2016)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린블랫은 “우리가 아는 사실들을 가져와 먼저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시대를 철저히 고증한 뒤, 그것을 양분으로 정보들의 싹을 부드럽게 틔워낸다.” 이 책은 생생한 문체로 쓰였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풍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을 가장 치밀하게 지성적이며, 고도로 정교하게, 더불어 가장 예리하면서도 열광적으로 하나로 엮어낸다. 요컨대 그린블랫은 『세계를 향한 의지』를 통해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깊이 있게 통찰한다. 그린블랫은 먼저 셰익스피어를 위대한 작가에서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소환한다. 주지하듯, 셰익스피어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제대로 된 공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공한 후 가문을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특히 그는 자신의 가문을 그와 그의 아버지의 평생의 염원이었던 신사 가문으로 일으켜야한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런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시골에서의 정규 교육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나가 문인과 성직자를 포함해 다양한 계층의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런던의 종교, 정치에 공포와 환멸을 느껴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으로 돌아와 여덟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을 한다. 그는 안정을 얻기 위해 결혼했지만 급하게 결혼식을 올린 것을 곧 후회한다. 셰익스피어는 그 후 여러 작품에서 일찍 결혼하는 것의 부당함을 토로한다. 그린블랫은 당시의 셰익스피어의 삶을 “연애, 결혼, 후회”로 정식화한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죽은 뒤 아내와 합장되는 것조차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잠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에 머물면서 기혼 남성의 삶을 살지만 곧 런던으로 다시 돌아간다. 런던으로 다시 돌아간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도망치면서 위대한 출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 셰익스피어는 극장 문지기, 하인을 동반하지 않은 손님들의 말을 지켜봐주는 일, 사슴 밀렵 등 다양한 경험을 한다. 요컨대 셰익스피어가 고향을 떠나 왜 런던으로 갔는지, 그리고 런던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그 행적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에 쌓여 있다. 아무튼 런던은 상대적인 익명성뿐만 아니라 환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놀라운 장소였고, 이곳에서 개인은 자신의 직접적인 기원을 벗어나서 전혀 다른 누군가로 변하는 꿈을 꿀 수 있는 장소였고, 셰익스피어가 이런 꿈을 갖고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즉 꿈을 이루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떠난 것이다. 혼잡하고 분주한 도시 런던은 셰익스피어의 극적 상상력을 계발하는데 유용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매일 다양한 오락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런던은 형벌이라는 볼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극장’ 같은 곳이었다. 런던의 잔인한 오락거리와 형벌은 나중에 셰익스피어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셰익스피어의 행적의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때문에 그린블랫은 당시 셰익스피어의 행적과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즉 런던으로 온 셰익스피어도, 그 전까지는 연극을 관람하기도 하고 또 직접 연기도 해 봤을 테지만, 오직 연극 공연만을 위해 독립적으로 세워진 극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런던에서 제대로 된 극장을 보고, 배우 그리고 극작가로서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길이라고 여긴 연극계는 변덕스럽고 경쟁적이고 늘 불안정했다. 하지만 연극은 여왕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을 고객층으로 하기에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고 성공의 보상도 컸다. 셰익스피어는 급증하는 대중 극장들에서 만들어진 이 특별한 기회를 제때에 붙잡았다. 당시에는 많은 작품이 필요했고 그는 빠른 속도로 작품을 집필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아직까지 극작가로서 명성이 확고하지 못했다. 배우로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크리스토퍼 말로의 『탬벌레인』을 계기로 전문적인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랜 친구 리처드 필드의 도움으로 셰익스피어는 여러 자료를 섭렵한 뒤 말로처럼 역사에 바탕을 둔 서사극 『헨리 6세』연작을 쓰기로 결심한다. 셰익스피어의 말로 모방은 그에 대한 존경과 영예보다는 오히려 회의적인 답신에 가까웠다. 어찌되었던 당시 셰익스피어는 아직 “말로가 능수능란하게 영입하는 그 거침없고 편집광적인 흥감어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1580년대 후반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런던 연극계의 주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 말로, 토머스 왓슨, 토머스 로지, 조지 필, 토머스 내시, 로버트 그린, 토머스 키드, 존 릴리 등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극작가들로서 ‘대학재사’(University Wits)라고 불렸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모두 20대에서 30대 초반이었다.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는 처음에는 이들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을 것이나, 그들이 셰익스피어가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관계가 더 이상 발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재사들 중 대부분은 속물적인 우월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면서 돈과 시간과 재능을 낭비했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그들과 다른 삶의 행보를 보였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성실하고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으고 또 유지했고, 감옥에 투옥되거나 거친 법정 공방을 겪는 일 없이, 농경지와 런던의 부동산에 안전한 투자를 하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에 아주 좋은 저택을 사 두고, 그리고 40대 후반에 은퇴하여 그곳으로 돌아”갔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안착하자 몇몇 대학재사들은 셰익스피어를 “벼락출세한 까마귀”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시 셰익스피어는 주위 극작가들로부터 부러움과 질투,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극작가로 대단히 성공했다. 극작가로 명성을 얻던 시기 셰익스피어는 우연히 사우샘프턴 백작과 인연을 맺는다. 당시 궁정 귀족들과 법학도들은 가장 열광적인 극장 후원자였지만, 사우샘프턴 백작은 특히나 그 시기에 더욱 극장 공연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의 부담으로부터 도피하는 특별한 기쁨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사실 그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만일 그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의 후견인 벌리 경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고심 끝에 시인에게 “자기도취적이고 문약한 젊은 백작이 결혼을 마음을 먹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맡기자는 영리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임무는 셰익스피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소네트’다. 원래 소네트의 목적은 사우샘프턴이 자기애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자기애에서 빠져 나오는 것 보다 “생식” 또는 “자기 형상의 재생산”에 방점을 둔다. 즉 셰익스피어는 의뢰인과는 달리 생식과 자기 형상의 재생산을 위해서는 결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한 여인에 대한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표현으로만 알려졌던 소네트를 그린블랫은 다른 관점에서 읽는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소네트를 써달라는 의뢰를 왜 받아들였을까? 무엇보다도 경제적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극장이 폐쇄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졌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소네트에 젊은 청년이 결혼을 하도록 설득한다는 초기 계획을 뒤엎어 버릴 만큼 강렬하게 솟아난 시인 자신의 사랑과 그리고 그 사랑의 최종적인 승리를 연출하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에게 결혼을 설득하기로 했을 때, 시인 자신이 아름다운 청년을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즉 시인이 청년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와 『루크레스의 겁탈』을 사우샘프턴에게 헌정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소네트의 주인공이 사우샘프턴 백작이라고 보는 게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다. 그리고 아도니스가 사우샘프턴이라면 자연히 비너스 셰익스피어 자신이 된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주지하듯, 사랑을 갈망하는 비너스를 아도니스가 거절하고 결국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시다. 이 시의 주제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린블랫에 따르면, 사우샘프턴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사랑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용인되지 않는 사랑이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집』 전편에 흐르는 주제인 사랑을 아내와의 결혼에서 찾지 못했다. 잘 알려졌듯이, 셰익스피어는 아내와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채워줄 누군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하여 황홀함을 이상화하고, 그의 애인을 대상으로 하여 욕망을 구체화하는 자신의 능력에 집중했다. 그리고 양 쪽 모두의 경우, 이들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장애물이 따랐다. 시인은 소유할 수 없는 남자를 숭배했으며, 숭배해서는 안 되는 여자를 욕망했다.” 요컨대 『소네트』는 지극하고 간절한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슬픔에 대한 ‘고통의 연서’였던 셈이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루크레스의 겁탈』, 『소네트집』으로 경제적인 보상을 거둔 뒤 셰익스피어는 다시 극작 세계로 돌아간다. 당시 셰익스피어와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극작가는 말로뿐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을, 말로는 『몰타의 유태인』을 집필한다. 당시 두 사람이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쓸 정도로 유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 정치적 사건에서 기인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주치의인 로페스가 스페인 왕과 내통하는 첩자로 밝혀지고 사형에 처해지면서 영국에는 반유대인 정서가 팽배한다. 그런데 그의 사형의 집행되는 순간 군중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로페스의 사형을 지켜보던 셰익스피어는 유대인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웃음에 주목하고, 이를 『베니스의 상인』에서 극화한다. 말로의 유대인 바라바스가 끔찍하다면, 셰익스피어의 유대인 샤일록은 우스꽝스럽다. 즉 셰익스피어는 “사악한 유대인이 최종적으로 처하는 낙담과 실패에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를 원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이 어떤 국제적인 음모나 책략이 아니라 돈과 사랑을 소재로 한 희극이 되기를 원했다. 벤 존슨을 비롯한 다른 시인들이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뒤에는 비통함과 애도를 가득 남은 시를 남긴 것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단 하나뿐인 아들 햄넷을 잃은 뒤에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어떤 시도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 시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기술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 정도로 당시에는 죽음이 친근한 장면이었다. 햄넷이 죽은 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쾌활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련의 희극 작품들인 『윈저의 즐거운 부인들』, 『헛소동』, 『좋으실 대로』를 썼다. 하지만 이 기간에 쓰인 연극들이 한결 같이 무난한 명랑함을 지녔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으며, 때때로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겪었던 깊은 상심에 대한 경험을 반영한다. 햄넷의 죽음 뒤 셰익스피어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많은 작품을 썼고, 인기 있는 출판업자에게 그 작품들을 팔았다. 이 시기 셰익스피어의 가장 대표작인 역시 『햄릿』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셰익스피어의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다. 당시 영국 또는 유럽에 널리 알려졌던 이야기를 모티브로 그의 창의성이 결합된 작품이 바로 『햄릿』이다. 작품의 독창성은 차치하고 『햄릿』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전 작품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어휘가 엄청나게 사용되고 있다. 『햄릿』에는 아들 햄넷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들의 죽음이 아닌 아버지의 죽음이 주인공의 영적 위기를 불러온다. 즉 『햄릿』의 비극성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 유령이 출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유령의 전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추적하다가 결국 햄릿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햄릿』발표 후 얼마 안 있어 셰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도 죽음을 맞이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내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셰익스피어는 죽은 자를 단순히 애도하지 않고 그들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가장 깊이 표현한 예술작품으로 자신의 감정에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이 바로 『햄릿』이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에게 작가로서나 배우로서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이전에도 비극 작가로서 상당한 경력을 쌓았으나, 『햄릿』이 이전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가 새로운 주제를 도입해서 발전시켰다거나 더욱 예리하고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줄거리를 주조해나가는 것을 배웠다거나 하는 것과 연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세부사항들을 대담하게 처내버리는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강렬한 내향성의 표현과 관련이 있다. 즉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비극을 어떻게 조립할 것인지를 재고했다. 『햄릿』이후 셰익스피어는 놀랄 만큼 훌륭한 비극 작품을 연속적으로 써냈고, 여기에 자신의 발견을 담아냈다. 그는 원전의 틀을 가져오되, 논리적으로 잘 짜인 극에 꼭 필요한 듯 보이는 부분들은 교묘하게 도려내고 자신의 연극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극작 방법을 “전략적인 불투명성”이라 부를 수 있다. 예컨대 『오셀로』에서는 원전에서는 중요하게 설명되었던 이아고의 악행의 원인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리어왕』에서는 리어가 세 딸에게 왕국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지도를 미리 작성한 후 자신에 대한 사랑을 왜 시험하는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햄릿』과 『오셀로』에서 했던 것처럼, 이야기에서 개시되는 행동에 합리성을 더해주는 동기를 걷어내고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당시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전성기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가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극장 소유주로서, 극작가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획득했다. 그는 그림이나 책을 수집하기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 이제 그는 성공한 극작가이자 배우인 동시에 중대한 불로소득자, 그리고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의 주요 시민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된다. 그는 ‘반역’에 대해 불안해했고 실제로도 반역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반란에 대해 늘 불안해하는 제임스 1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맥베스』를 썼다. 주지하듯, 『맥베스』는 실패한 반란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에 제임스 1세를 시해하려는 ‘화약음모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 『맥베스』와 ‘화약음모사건’이 전혀 관련 없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맥베스』와 ‘화약음모사건’은 별개지만,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 당대의 시사 현안과 연결되는 미세한 암시들을 극중에 심어 놓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시공간에 관계없이 계속 읽히는 보편성은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맥베스』에도 전략적인 불투명성이 나타난다. 즉 맥베스가 처음부터 던컨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고 뱅쿠오를 죽이려했는지, 아니면 마녀의 예언을 듣고서 결심한 것인지, 맥베스 부인의 종용으로 이 모든 것을 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에서 정확하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맥베스가 자신의 살인적인 환상들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답을 주기보다는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아니 어쩌면 답이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연극이 갖는 천재성은 이 암시의 능력, 뭔가 찜찜한 느낌으로부터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 부분을 짚어주는데 있다. 그것은 관객이 직접 볼 수 없는 곳에 이러한 위협들이 가장 암시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며, 일상의 가장 평범한 관계들에 슬며시 녹아들기 때문이다.” 『맥베스』에 대한 제임스 1세의 반응이 어땠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의 최고의 자리를 잃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한 소송 사건을 고려해본다면 『리어왕』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부터 은퇴의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두 딸이 아버지의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 그가 정신이상자라는 판결을 받아내려고 시도할 때 오직 막내 딸만이 아버지의 편을 들며 언니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던 사건이다. 우연하게도 아버지의 편을 들며 언니들에게 저항했던 막내 딸 이름 ‘코델’(Cordell)은 『리어왕』의 막내 딸 ‘코딜리어’(Cordelia)와 거의 같은 이름이다. 한편 셰익스피어는 리어왕과는 달리 딸들에게 얹혀살 의향이 전혀 없었다. 그는 1602년부터 1603년까지 작가로서 놀랍도록 창조적이었고 이 시기에 재산을 모으고 신중하게 투자했다. 노년에 이르렀을 때 딸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혹은 극장에도 의존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는 검소한 생활과 안정적인 부동산 투자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그는 정신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든 글을 쓸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그는 은퇴준비를 했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 가운데 『겨울이야기』와 『태풍』은 모두 뚜렷하게 인생의 가을에 이른 듯한 회고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셰익스피어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이룬 것들을 자의식적으로 돌아보며, 그것을 뒤로 하고 돌아선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태풍』에서 마법사 프로스페로는 마지막에 마법의 힘을 상실하며 평범한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개인적인 신중함과 섬세한 계산, 성향 상 자이식의 외적 표현에는 극도로 인색한 배경에서 셰익스피어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행위, 그리고 다양한 소재들을 좀스럽고 꼼꼼하게 모아 온 것에 짝을 이루어 엄청난 상상력의 관용을 끼얹어 이룩한 성취로 그이 경험을 쌓아갔다. 셰익스피어는 프로스페로처럼 언젠가 극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고 이를 오래 준비했다. 말년의 셰익스피어는, 즉 『태풍』이후의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의 모습보다는 평범한 한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태풍』이후 존 플레처와 몇 작품을 공동 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 집을 장만한다. 그는 고향집뿐만 아니라 런던에 집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오랜 바람을 마침내 이룬 것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살지는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한’ 그 곳에도 무언가를 소유한 것이다. 고향으로 내려간 셰익스피어는 당시 지주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에 논란에 휩싸인다. 당시 지주들은 뒤죽박죽 섞인 소규모의 대지들과 공용 들판을 모두 정리해 보유 대지를 집중적으로 늘리고, 얼마간의 토지를 떼어 내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목양지로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이는 부유층에게는 인기 있는 경제 정략이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미움을 받는 방식이었다. 후일 에드워드 본드와 같은 극작가들은 셰익스피어의 인클로저 운동 참여를 비판했지만, 셰익스피어는 다른 지주들과 마찬가지로 부의 축적보다는 농업의 현대화 과정을 지지했으며, 장기적으로 보면 그 방법이 모두가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가족이야기다. 아내와는 사이가 원래부터 좋지 않았고 아들 햄넷이 죽고 아버지도 죽고 형제도 거의 다 죽었다. 그나마 그에게 큰 위안을 준 것은 딸들이었다. 큰 딸 수재너는 자신이 맘에 들어 했던 사람과 결혼했지만, 작은 딸 주디스는 자신이 전혀 원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와 결혼할 작은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에게 자신의 유산이 돌아가지 않도록 유언장을 남겼다. 자신의 아내에게도 공식적으로는 특별한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 유명한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남겼을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서 왕과 반역자들, 로마 황제와 이국의 여러 영웅들의 삶을 상상했고, 런던의 거친 연극계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았지만, 말년에는 ‘일상적인 것들’을 기꺼이 껴안았다. 아니 일상적인 삶을 위해 그런 시련과 고난을 감내했는지 모른다. 그는 은퇴 후 고향에서 시골 신사로서의 일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그 자신의 오랜 숙원이었던 가문의 문장도 구매했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큰 보상을 받았다. 재작년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었고 올해는 셰익스피어가 서거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많은 행사가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불멸의 작가라는 문학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위대한 작품을 읽으며 작품의 문학적 성과를 음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혹은 몰랐던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는 것도 또한 큰 의미가 있다. 작가의 개인적인 삶 자체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개인사를 알고 작품을 읽으면 해석의 폭이 한층 더 넓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를 알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안내서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다양한 사회적 풍경까지 보여주는 것은 덤이다.
207. 금기를 넘어서라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낯선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친한 사람들 사이에도 대화 주제로 피하거나 꺼리는 주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성’(sex), ‘정치’(politics), ‘폭력’(violence), ‘종교’(religion) 등을 들 수 있다. 위 주제들은 매우 일상적이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주제로는 기피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위 주제로 한 대화는 대부분 생산적인 대화나 토론보다는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말싸움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논쟁으로 치닫지 않을 만한 연예, 스포츠, 날씨, 여행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끝난 뒤에는 왠지 조금 공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이런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즉 우리는 의식적으로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미 금기를 넘지 말라고 내면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은 ‘과감하게’ 이런 금기를 넘어서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금기를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역설한다. 『30금 쌍담』(민음사, 2016)은 그들의 과감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원래 그들의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4가지 금기 주제, 즉 ‘섹스’, ‘폭력’, ‘정치’, ‘종교’를 피하지 말고 당당하고 과감하게 맞서라고 역설한다. 그들의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는 각 주제와 연관된 영화, 즉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1976),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 피에르 파솔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1975), 루이스 브뉴엘의 <비리디아나>(1961)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각각의 주제도 접근하지 쉽지 않을뿐더러 이 주제들을 감싸고 있는 영화들 역시 만만치 않다. 아니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는 심리적으로 아주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래도 무척 힘들다. 『30금 쌍담』의 저자들은 이 책에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우리들 스스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지, 성은 무엇인지, 폭력은 무엇인지, 종교는 무엇인지, 너와 나는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예술을 넘어 우리의 삶에 대해 “재질문하고, 재사유하게 한다.” 이 짧은 글에서 네 편의 영화를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주로 성과 정치에 관련된 영화인 <감각의 제국>과 <살로, 소돔의 120일>을 중심으로 성과 정치, 그리고 폭력과 종교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먼저 살펴볼 주제는 ‘성’이다. 언급된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감각의 제국>은 원래 “집에서 몰래, 홀로 조심스럽게 보는, ‘은밀한 음지’의 영역에 속해 있”는 영화다. 주지하듯, <감각의 제국>은 “남녀의 섹스를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담은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는 1936년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감각의 제국> 뿐만 아니라 이 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실록 아베 사다>(1975)라는 영화도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본에서 촬영하고 편집과 후반 작업은 프랑스에서 하며 검열을 피했지만, <감각의 제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따라,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 나라의 검열 기준에 따라 다른 판본으로 상영되었다. 즉 <감각의 제국>은 각 나라의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의 양상과 정도를 살펴보는 시금석과도 같다. <감각의 제국>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러브스토리다. 사랑 가운데서도 금기된 사랑, 즉 불륜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김기덕의 <섬>(2000)이 그렇듯이, <감각의 제국>은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소유욕도 점점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감각의 제국>에서 사다는 기치초가 아내와 정사를 나누자 질투와 살기를 느끼고, 결국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감각의 제국>은 보기 전에는 ‘야한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보고 난 후에는, 특히 여러 번 보고 나면(여러 번 보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사랑의 ‘허무함’ 또는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즉 “섹스로 허무를 달랠 수 있지만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영화 <감각의 제국>은 섹스는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수 많은 사랑 행위 중 하나일 뿐”이고,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섹스보다는 진정한 사랑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제국>은 야한 영화라기보다는 슬픈 영화다. 다음으로는 ‘정치’다. 출전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게 가난이라면, 부자들에게는 권태로움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처음 보았을 때 불현듯 이 구절이 떠올랐다. 일단 이 영화는 파시스트들의 엽기담 또는 부자들의 권태 탈출기로 읽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몰락하자, 그 잔당들은 이탈리아 북부 살로에 괴뢰 정권을 수립한다. 어느 날 이곳 살로 공화국을 대표하는 공작, 주교, 판사, 의장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고 권태를 해결할 연회를 준비한다. 그들은 수하를 시켜 마을의 예쁜 소년과 소녀를 잡아들인다. 그들은 인본주의적 가치에 반대하는 규칙을 정하고, 자신들의 파티를 어떤 검열도 없이 자유롭게 즐기기 위해 서로의 딸과 결혼식을 올리고, ‘기벽의 장’, ‘똥의 장’, ‘피의 장’을 벌인다. <살로, 소돔의 120일>에는 섹스, 정치, 폭력, 종교 등 금기의 주제가 적나라하게 다루어진다. 파솔리니는 이 영화에 파시즘에 저항하는 자신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투영한다. 파솔리니는 영화감독 이전에 시인이자 소설가고, 당대 유럽 사회를 비판한 논객이자 영향력 있는 영화이론가다. 그에게는 “주변부적인 계급과 정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평생 관심사였”다. 파솔리니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작가였고, 영화가 지닌 이미지의 힘을 폭력적으로 극대화시켜 쟁점을 만들”었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파솔리니가 “금기라는 주제를 다룰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드 후작의 『소돔의 120일』을 각색한 영화다. 그는 사드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파시즘의 종말을 고하는 때를 배경”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민중의 삶을 묘파한다. 즉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파시스트의 권태적인 엽기를 다루지만, 심층적으로는 “소멸해가는 민중 혹은 인간의 삶을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제국>이 단순히 선정적이라면, <살로, 소돔의 120일>은 선정적인 것을 넘어 폭력적이고 정치적이다. 또한 반종교적이다. 당연히 “동물만도 못한 상태로 전락해 버린 인간의 삶을 들여다” 봐야 하기 때문에 <살로, 소돔의 120일>은 <감각의 제국>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몰락해가는, 혹은 몰락이 예정된 살로 공화국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4명의 파시스트들은 ‘극한의 향락’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쾌락과 권력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행”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행사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쾌락의 정도를 실험한다. 쾌락이 커질수록 그들은 “권력이 주는 쾌락에 더욱 중독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종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살로, 소돔의 120일>은 “인간이 저항을 잃어버리면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저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노예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감독 파솔리니는 이 영화를 통해 “강요하는 규칙에, 자기도 모르게 순종하”면 경제적 보상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칙이 강요된다고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30금 쌍담』의 두 저자는 <살로, 소돔의 120일>을 “아주 탁월한 [잔혹한] 교양 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30금 쌍담』의 두 저자는 책의 목차를 ‘트랙’으로 나누고, 각 트랙의 끝에 버킷리스트 형식으로 독자에게 당부 또는 충고한다. 예컨대 트랙1의 버킷리스트는 ‘숙제 검사받지 마라’, ‘마음에 들면 일단 자고 보자’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랑 또는 연애를 숙제(이벤트)처럼 하지 말고 본능에 따르라고 충고한다. 즉 눈치 보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트랙3의 버킷리스트는 ‘복수를 생활화하라’, ‘수치심을 넘어서라’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독재 권력이 자신의 무자비한 힘을 행사해 피해를 가했다면, 절대 잊지 말고 그 권력을 징벌해야 한다. (…)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심지를 더 굳건히 다져라. 새로운 길은 우리가 수치심을 넘어설 때 비로소 열린다.” 권력에 굴종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핵심이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의 삶은 “꼭 해야 하는 것”(MUST)과 “해서는 안 되는 것”(MUST NOT)으로 둘러싸여 있다. 각각 ‘의무’와 ‘금지’로 환언된다. 의무를 다하지 못했거나 금지 사항 또는 금기 사항을 어겼을 때는 처벌이 뒤따른다. 때로는 그 처벌이 상상할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30금 쌍담』의 한 저자는 “착한 사람은 길들여진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들여지기 않기 위해서는, 즉 착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기를 넘어서야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금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금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단해져야 한다. 금기를 넘어서는 것과 단단해 지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둘 모두가 필요할 때다. 지금이라면 이런 마음과 행동이 더욱 더 필요하다.
206. “좋은 사회는 좋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다”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요즘 많이 언급되는 칼 폴라니는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화두로 19세기 자본주의의 성장과 고대 원시 사회와의 관계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거대한 전환』에서 근대의 산물로 알려진 ‘경제’와 ‘시장’을 고대로부터 전승된 보편적인 산물로 규정하고, 오히려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이 상품화되고 인간사회의 전통적 기능이 박탈되었다고 파악했다. 따라서 그는 토지 ․ 노동력 ․ 화폐라는 추상에 바탕을 둔 19세기의 시장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고대 경제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거대한 전환을 통해 사회적인 완결성을 유지하면서 생산과 분배가 가능하다. 이처럼 폴라니는 경제 ․ 사회과학 전반에 반성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시장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폴라니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또는 반성적 성찰은 이반 일리치에 의해 보다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양상을 띤다. 그렇기에 일리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 “가장 인간적인 래디컬리스트” 등으로 불린다. 일리치는 원래 가톨릭 사제였으나 교회에 대한 잦은 비판으로 인한 교회와 마찰로 결국 사제직을 버린다. 그 후에는 여러 대학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연구와 저술에 전념한다. 그의 연구와 저술은 역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철학, 언어, 여성, 의료 등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병폐를 종횡한다. 최근에 다시 번역되어 출간된 『그림자 노동』(사월의 책, 2015)에서도 경제, 노동, 발전, 언어, 교육, 읽기와 쓰기, 과학, 기술, 가족, 서비스, 가난, 제도, 가치 등 광범위한 주제가 논의된다. 전술했듯이, 일리치는 폴라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즉 그는 폴라니와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사를 시장경제가 자급자족 경제로부터 ‘뽑혀 나온’(disembedded) 과정으로 보았다. 바꿔 말하자면 전근대 자급자족 경제가 붕괴되면서 근대 시장경제가 등장했다. 그리고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노동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임금노동과 비자급자족적 가내 공간에서 주부가 행하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그림자노동으로 분화된다. 일리치가 이 책에서 주요 논제로 삼고 있는 게 바로 이점이다. 그는 노동의 문제를 근대화와 발전과 연동시켜 파악한다. 근대하면 자동적으로 전근대를 떠올린다. 통상적으로 근대는 편익, 전근대는 불편함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근대는 발전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일리치는 발전을 환상이라고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발전이 겉으로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설과 기관을 가져와 편익을 가져왔지만, 이면에는 예상치 못한 외부효과가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역생산성이 초래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지은 병원, 학교 및 복지 제도는 그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받지 못하고 오히려 특권층이 수혜자가 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공평한 발전이 생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른다. 발전 또는 성장을 지향함에 따라 시장 경제 하에서 인간의 노동은 유급이건, 무급이건 획일화와 관리화로 수렴된다. 반면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공생공락’의 도구를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노동의 산물인 재화와 서비스가 강제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라 창의적인 활동의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임금노동과 그림자 노동 모두 쇠퇴한다. 아니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의 경계가 무화된다. 결국 자급자족 경제하에 있는 사람들은 발전을 거부한다. 바꿔 말하자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발전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즐기는 삶을 가져올 수 있는 발전을 추구한다. 일리치는 고대, 중세로부터 시작된 발전의 역사적 뿌리를 탐색하면서 발전은 곧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는 기획으로 규정하고 이는 생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신 자급자족 경제, 즉 토박이 노동에 바탕을 둔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토박이 노동이란 생계를 꾸리고 향상시키는 무급 노동을 가리킨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토박이 노동을 통해 “빼어난 미적 감각, 기쁨에 대한 각별한 체험, 다른 집단이 이해하기는 해도 반드시 함께할 필요가 없는 특정 집단만의 고유한 인생관”을 추구하는 삶이다. 순환논리 같지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삶에서 토박이 영역을 확대할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야만 하고, 그럴 때 비로소 자신만의 토박이 삶을 살 수 있다. 일리치는 근대에 토박이 삶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파악했는데, 그는 경제가 아닌 ‘일상 언어’로 당시의 역사를 접근한다. 그는 논의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492년, 즉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역사에서 말하는 해에서 시작한다. 주지하듯,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항해를 떠난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인도에 도착하려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을 인도라고 믿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도움으로 신대륙에 대한 꿈을 실천하려 할 때, 스페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려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네브리하라는 인물로서 여왕에게 새로운 언어의 문법책을 헌사한다. 그의 목적은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근대화에 봉사하기 위함이다. 네브리하는 살아있는 언어를 인쇄되는 책의 형태에 맞게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의 표준화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네브리하가 주장하는 언어의 표준화는 오늘날의 그것과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그의 주장은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는 토박이말을 금지시키고 대신 언어를 표준화함으로써, 가르치는 공식 언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일리치는 토박이말을 버리고 공식적으로 모어(모국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네브리하의 주장을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다. 역사적으로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기준점을 ‘왕권의 확립’이라면 왕권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요소는 경제와 통치의 효율성이다. 그리고 통치의 효율성은 언어, 즉 공식어의 확립에서 비롯된다. 근대 국가의 형성을 자본주의의 확립과 연동해서 파악하는 것은 공식적인 연구였다면 근대를 모어의 확립으로 본 일리치의 사유는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하다. 일리치는 근대를 자급자족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규정한다.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자급자족을 넘어서는 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항로가 필요했다. 먼저 뛰어든 국가는 스페인이었다. 그리고 이 임무를 담당한 것은 주지하듯, 콜럼버스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이 그저 신항로가 아니라 신대륙임을 깨닫는 데는 10년이 족히 걸렸다. 콜럼버스가 끝까지 존재를 부정한 대륙에 대해 ‘신세계’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 전쟁의 또 다른 첨병이 바로 네브리하다. 그는 콜럼버스와 달리 토박이말을 모어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일반적으로 모어 또는 모국어에는 긍정적 의미가 부여되지만 일리치는 다르게 본다. 일리치는 네브리하가 사람들이 의사소통하는데 사용되는 토막이말 대신에 통치의 필요성, 즉 규율과 관리를 위해 모어를 제안했다고 보았다. 오늘날 모어는 아이가 처음 배우는 언어, 국가 당국이 제1언어로 쓰기로 정한 언어를 의미한다. 모어는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인지되는 언어라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체득되는 언어다. 그러나 근대에 모어는 가르치는 언어, 또는 배우는 언어를 가리킨다. 가르치는 모어에 사람이 종속된다는 것은 인간의 필요를 상품으로 정의하는 시대에 인간이 처한 모든 종속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네브리하는 이런 종속의 이데올로기를 처음으로 정식화했다. 근대와 전근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일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산업화 이전의 문화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근대의 가르치는 모어는 토박이말을 ‘구축’(驅逐)하고 말에 대해 근원적 독점을 ‘구축’(構築)했다. 일리치는 근대의 또 다른 키워드로 ‘민중’을 꼽았다. 그는 12세기 사상가 생빅토르 위그를 예로 ‘민중에 의한 연구’와 ‘민중을 위한 연구’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일리치는 위그를 전통적 사상을 소화해 새롭게 자신의 사상으로 만든 새로운 유형의 천재로 간주한다. 위그는 인간의 “기계과학이 인간의 신체적 약점을 치료해주는 철학의 한 부분”이라고 정의했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심지어 인간이 과학 기술에 의존하는 현대의 조류에 비추어보았을 때 위그의 예지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인간의 나약함을 치료하는 세 가지 수단으로 ‘테오리카’ ‘프락티카’ ‘메카니카’를 꼽았다. 위그는 자신들이 훼손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운명에 처한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부족함을 낫게 할 치료제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일리치가 위그의 예를 통해 역설하고자 하는 점은 과학기술에 대한 경계다. 즉 인간이 과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대신 과학 기술은 인간이 삶을 보다 쪽으로 이끄는데 필요한 도구적 기능을 수행해야함을 역설한다. 그는 “‘인간이란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며 이들을 위핸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전문가의 임무’라는 생각을 뒤집어야만 한다. 이를 깨닫지 않으면 타락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위그의 경고는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할 자본주의의 대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에서 “산업 경제의 가려진 측면”으로서의 ‘그림자 노동’을 논한다. 그림자 노동이란 저임금 노동이나 실업이 아닌 무급노동을 가리킨다. 이 점은 마르크스주의자, 노동조합주의자, 일부 여성주의자와 차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임금노동을 하려면 발탁되어야 하지만, 그림자 노동은 배정받는 것이다. 그림자 노동에 들어간 시간, 수고, 수모에 대해서는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림자 노동은 이런 무보수의 자기 규율성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임금 노동보다 더 중요성을 띠게 된다.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임금 노동의 역사를 살핀다. 오늘날에는 노동하면 당연히 임금 노동을 떠올리지만 중세에 임금 노동은 비참함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임금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임금 노동자였던 게 아니라,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으로 삶의 토대가 되는 가정이 붕괴되고, 자급자족을 영위한 수단을 빼앗겼으며, 배고픈 사람을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해 결국 임금노동자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면서 “임금 노동은 그림자 노동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 즉 “임금 노동은 궁핍의 증거가 아니라 쓸모의 증거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성별의 경제적 구분, 경제적 개념으로서의 가족, 가정과 공공 영역 간의 대립 같은 전례 없는 현상들로 인해 임금 노동은 삶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임금 노동의 가치 상승으로 집 밖에서 임금 노동하는 남성은 집 안에서 가사 노동, 즉 그림자 노동하는 여성을 관리하고 통제하기에 이른다. 또한 남성은 자신의 임금에 대한 가족의 의존도가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자신이 사회의 정당한 노동을 모두 책임지고 있으며 비생산적인 여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회와 남성들은 여성이 하는 일을 “노동이 아닌 것”(non-work)으로 규정하며 임금 노동이 그림자 노동에 대해 승리했다. 일리치는 노동의 역사에서 최근의 경향까지 살핀다. 즉 최근 들어 여성의 노동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관점의 남성의 임금 노동과 여성의 그림자 노동의 구도를 넘어서, 여성의 분만, 수유, 청소, 매춘, 강간, 더러운 빨랫감과 욕지거리, 모성애, 아동기, 낙태, 폐경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산업사회의 그늘지고 지저분한 밑바닥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까지 감춰져온 억압을 폭로하고 해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림자 노동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할까.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이 함께 등장했다고 보았다. 그림자 노동에 굴레가 처음 씌워진 것은 주로 양성 간의 경제적 결합을 통해서였다. 즉 임금 노동자와 그에게 의존하는 식구로 구성된 19세기 부르주아 가족이 자급자족 중심의 가정을 대체하면서부터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이 대립되고 최초로 여성이 지위가 박탈되는 과정은 가정을 넘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박탈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화는 한마디로 차별의 역사로 규정될 수 있다. 일리치는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자급자족 경제가 붕괴되었고 그에 따라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으로 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은 주로 임금 노동을 담당하고 여성은 그림자 노동을 담당하는 서로 대립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남성은 임금 노동에 종속되고 여성은 그런 남성에 종속됨으로써 여성은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사회에 감상적인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급자족 경제를 복원하는 것이다. 일리치의 주장의 핵심 또한 ‘자급자족 경제의 복원’으로 귀결된다. 그에 따르면, “자급자족에 부여된 가치야말로 성장이 계속 지속도기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이고, 따라서 자급자족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파괴한 사회에서는 자급자족의 대체물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사회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때로는 눈에 보이게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자급자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양산한다. 이런 가부장적 속임수는 억압받는 자들의 대표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억압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일리치의 답은 간단하다. 개인이 타인에, 사회에, 혹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좋은 사회란 좋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답은 늘 가까이 있다.
205. 혐오발언에 저항하라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논문 키워드는 ‘여혐’이었다. 그 가운데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왜 한국 남성은 한국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일베와 여성 혐오」는 연구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들이다. 그 외에도 다수의 여혐 논문들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되었고 주목을 받았다. 여혐은 연구자들의 관심사로만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종종 비화되어 언론과 대중 또한 주목했다. 여혐, 더 넓게 혐오, 혐오 발언은 2016년 한국 사회의 아주 특별한 순간을 예거한 키워드다. 혐오 발언은 보통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혐오의 언어적 인상을 포함한다. 하지만 혐오 발언은 매우 다층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무엇이 혐오 발언이고, 어디까지가 혐오 발언인지 판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혐오 발언 당사자들이 은폐와 위장의 전략을 취하는 경우 혐오 발언을 판별하는 일은 더욱 더 어렵다. 지금까지 혐오와 혐오 발언은 주로 온라인상에서 행해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프라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혐오 대상도 여성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적 빈곤층,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혐오 발언의 수위 또한 이제는 소수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요컨대 혐오와 혐오 발언은 장소, 공간, 그리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그 정도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인지 최근 국내외적으로 혐오 또는 혐오 발언과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고, 혐오 발언과 관련해 활발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낸시 프레이저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며 토론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유민석 옮김, 알렙, 2016)에서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점, 혐오 발언에 대한 수신자들의 저항을 비롯해서 침묵이나 전유, 언어와 권력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문제, 언어적인 상처, 타인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 언어적 생존이나 화자의 책임 등과 같은 언어와 권력, 저항에 관한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다룬다.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서 무엇보다도 혐오감과 이에 근간한 혐오 발언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녀는 ‘언어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가?’, ‘혐오 발언이 곧 혐오 폭력인가’, ‘인종차별, 여성차별, 동성애차별은 곧 차별행동인가’ 등과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혐오 발언을 학술의 장에서 대중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전술했듯이, 혐오 발언은 이제는 몇몇 극소수의 일탈 행위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혐오 발언이 어떻게 그런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혐오 발언 행위의 주요 효과가 개인적인 피해자나 피해자 집단 측의 잠재적인 대응을 침묵시키는 것, 즉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 발언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 발언 규제 옹호론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혐오 발언 피해자를 위해 국가가 직접 혐오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혐오 발언자들은 국가 권위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그들이 내뱉는 “혐오 발언은 국가 개입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공적 영역 내에서의 자신의 자유로운 작동을 통해 묘사하거나 촉진시키는 종속을 야기할 수 있는 권력”을 갖기 때문에, 혐오 발언은 국가적으로 규제되어야 한다. 즉 혐오 발언자는 힘없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라는 주권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자이고, 혐오 발언의 피해자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주변화 된 이들이다. 예컨대 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은 주로 혐오 발언의 가해자들이고, 흑인,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은 주로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서 혐오 발언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 규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혐오 발언자들은 과연 주권 권력을 가진 자들인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가 보기에, 혐오 발언자들이 갖는 상상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독립적이지 않다. 그들은 혐오 발언을 창시한 기원적 혹은 주권적 저자가 아니라, 기존의 이미 생산된 혐오 발언을 자신의 담론 속에서 인용하고 있는 파생적인 2차 저자에 불과할 뿐이다. 버틀러는 “권력은 더 이상 주권적이지 않으며 도처에 있다”는 푸코의 견해를 원용해, “권력은 주체나 주체의 의도, 혹은 국가 권력과 같은 주권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들로 분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권력은 더 이상 주권 국가의 형태로 제약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버틀러는 혐오 발언을 국가가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혐오 발언 규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반대한다. 버틀러는 포르노그래피와 인종차별주의가 어떤 형태의 법적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도 비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혐오 발언 화자의 ‘간접적 의도’를 ‘직접적 행동’으로 실천하고, 억압당하는 집단 구성원들을 종속하거나 주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마땅히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버틀러는 “언어가 의도한 대로 행위가 되고,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가 주체를 열등한 지위로 재종속시킨다”는 그들의 견해를 ‘발언내행위론’으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이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자신이 발언하는 순간에 말을 전달받은 자를 구성한다. 혐오 발언은 어떤 상처를 묘사하거나 상처를 결과로 생산하지 않는다. 혐오 발언은 그런 발언의 말하기에 있어서 상처 그 자체의 수행이며, 여기에서 상처는 사회적인 종속으로 이해된다.” 버틀러는 “만일 우리가 혐오 발언은 발언내행위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말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상처를 수행한다는 것을, 그리고 권력의 사회적 지형이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한 마디로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모든 견해에 반대한다. 그녀가 『혐오 발언』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언어는 행위하고, 심지어 상처를 주게끔 행위한다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혐오 발언 규제 지지자들이 기술하는 꼭 그런 방식으로 언어가 말을 건네받은 자에게 직접적이거나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를 제공”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혐오 발언 규제 옹호론자들은 혐오 발언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혐오 발언의 범위를 규정하고 혐오 발언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보기에 국가가 혐오 발언을 규제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혐오 발언을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버틀러는 국가에 혐오 발언 규제를 맡겨도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혐오 발언을 해석하는데 있어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소수자 집단에 불리하게 혐오 발언 규제를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무엇이 혐오 발언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면, 국가의 혐오 발언에 대한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해석으로 혐오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만일 [어떤] 혐오 발언이 차별 행위로 간주된다면, [그] 혐오 발언은 법원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되며, 따라서 [그] ‘혐오 발언’은 법원이 그렇다고 하기 전까지는 혐오스럽거나 차별적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혐오 발언이 있다고 판결하는 법원이 있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런 법원이 없다면, 그 용어에 대한 완전한 의미에서의 혐오 발언이란 없는 것이다.” 이처럼 혐오 발언을 국가와 법에 맡기려는 “규제 노력들은 공적으로 보호를 받는 표현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표현 간의 구분을 강제하는 국가의 권력에 의해 불가피하게 강화”된다. 간명하게 요약하면, 버틀러는 의도치 않게 “국가는 혐오 발언을 생산”하고 또한 이를 편파적이고 때로는 자의적으로 해석할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혐오 발언을 국가가 규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이와 같이 국가가 혐오 발언을 규제하고 법으로 개별 혐오 발언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혐오 발언으로 비롯되는 모든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혐오 발언을 한 개별 화자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 역시 “말이 상처를 준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참이며, 증오로 가득 찬 발언, 인종차별 발언, 여성혐오 발언, 동성애 혐오 발언에 격렬히 저항해야 한다는 것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혐오 발언의 책임은 역사적이고 관습적이기 때문에, 개별 혐오 발언자만의 문제만은 아니고 처벌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녀가 생각하기에 혐오 발언의 권력을 분석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혐오 발언의 권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저항을 개별 주체의 몫으로 남겨둔다. 혹자는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혐오 발언을 단지 개별주체들의 대처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방임 전략과 흡사해 보인다고 지적도 하지만, 버틀러는 혐오 권력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국가의 규제보다는 개별 주체의 저항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혐오 발언에 저항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버틀러는 혐오 발언의 청자, 즉 혐오 발언의 피해자가 기존 권력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혐오 발언의 언어와 효과 사이의 간격을 활용해 발언자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되받아쳐 말하거나’(speaking back), 수행문이 도용과 기생에 취약하다는 점을 활용해서 반박할 수 있다면 저항이 가능하다고 본다. ‘발언효과행위’, 즉 언어 행위가 의도치 않은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언어 행위로서의 언어 행위는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혐오 발언에 대한 이러한 반란적인 되받아쳐 말하기, 또는 기생적인 말하기는 역설적으로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를 침묵시킬 수 있다. 언어 행위가 반드시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혐오 발언의 효력이 절대적이지 않고 전유와 전복에도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틀러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혐오 발언의 권력은 겉보기보다 덜 일방적인 것이며 불확실”하고 “발언이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의 의미는 어떤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변화되거나 탈선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상처를 주고자 하는 그 말들이 자신들의 기호를 상실하며 의도된 것과 반대되는 어떤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요컨대 혐오 발언은 혐오 발언 수신자를 구타하고 열등하게 규정하고 그들을 침묵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항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고 전복적인 재인용도 가능하다. 발언내행위론자들은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에게 모욕감과 상처를 주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강력하게 처벌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버틀러는 언어적인 상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발언뿐만 아니라 전달되는 방식, 즉 주체를 호명하고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의 효과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며 혐오 발언의 국가적 규제를 반대한다. 즉 버틀러는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고 불구로 만든다는 ‘발언내행위론’에 반대하고 대신 저항과 반항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발언효과행위론’을 제시한다. 혐오 발언은 양가성을 갖는다. 즉 혐오 발언은 “우리를 종속시키기도 하지만 행위능력의 장면을 양가성으로부터 생산함으로써 그 부름이 발생한 의도를 넘어서는 일련의 효과들 또한 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그 이름에 단순히 종속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과거의 맥락에서 이탈해 자기 정의의 노력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는 말에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맥락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그 말을 재전유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침묵 속에서도 말할 수 있고, 혐오 발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다.
204. 조금 색 다른 고전 입문기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 사회에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해, 이제 ‘인문학 읽기’ 혹은 ‘인문학 공부’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인문학은 경제, 경영, 사회, 문화, 과학 등 다른 학문과 융합되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문학 열풍에 대한 찬반 양론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인문학 열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컨대 국내 여러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포함한 각 분야의 추천 도서 목록을 내놓았고, 이와 함께 청소년 또는 직장인이 꼭 읽어야 할 인문학, 문학, 사회학 또는 철학 50선 또는 100선 등 다양한 독서 목록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의 독서 목록을 채우고 있는 책들은 대체로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다. 그런데 동양 고전이든, 서양 고전이든 고전은 기본적으로 읽기가 만만치 않다. 내용도 쉽지 않지만 그 보다도 대부분의 고전들의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어디 가서 ‘교양 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혹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고전 읽기에 도전하지만 대체로 그냥 도전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개인적으로도 고전뿐만 아니라 어떤 책이든 원전으로 읽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다는 말은 다름 아닌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일에 공짜가 없듯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데 쏟은 시간과 노력만큼 책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비례한다. 그렇지만 언어 문제도 있고 시간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원전을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쉬운 방법, 즉 고전을 이미 읽은 사람, 혹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쓴 다이제스트를 읽는다. 예컨대 ‘한권으로 읽는 서양고전’, ‘하룻밤에 읽는 세계문학’,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철학’ 등 다양하지만 비슷비슷한 책들이 고전 입문자들의 눈과 귀와 손을 이끈다. 누군가는 이런 독서를 지적 허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보다는 다이제스트지만 그래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세계문학 브런치』(정시몬, 부키, 2016)도 고전 다이제스트의 범주에 속해 있는 책이다. 부제로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이라고 해서 원문(영어)을 일부 포함시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구성면에서 기존의 책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다른 책과 구별되는 점이 발견된다. 즉 기존의 고전 다이제스트들이 말 그대로 두껍고 어려운 고전의 요약본이라면, 이 책은 저자의 고전 독후감이라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리고 그 독후감은 전적으로 저자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과 감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독서의 유혹을 불러일으키고, 원전을 이미 읽은 독자에게는 재확인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고전’의 자격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고전은 사전적 정의로는 “고대 그리스 혹은 로마의 저작물”, “지속적인 탁월함을 가진 작품”이다. 또한 마크 트웨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사람들이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고전은 ‘유명하고 위대하지만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읽고 싶어도 쉽게 읽지 못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고전은 너무나도 많다. 당연히 읽은 고전보다는 읽지 않은 혹은 평생 읽지 못할 고전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 읽기는 어려운 숙제다. 그렇다면 고전 읽기 바람은 도대체 언제부터 불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18세기 영국의 풍경을 잠깐 살펴보자. 당시 영국에서 고전은 ‘라틴어로 쓰인 그리스 로마의 책’을 가리킨다. 라틴어로 쓰였기 때문에 당연히 고전은 라틴어 교육을 받은 특수 계층만이 향유했고, 평민(일반 독자들), 더 나아 산업 혁명을 통해 경제적 부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중산층마저도 고전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18세 중반 산업 혁명과 함께 ‘계몽주의’(Enlightenment)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의 지적인 욕구(수요)가 더욱 팽배해진다. 수요가 있으면 당연히 공급이 있는 법이다. 당시 종교 문제 때문에 취직을 할 수 없었던 알렉산더 포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번역해 잡지에 기고했는데, 이게 요즘 말로 ‘대박’을 친다.(당시 영국에서는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 신자가 아니면 국가 공무원이 될 수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는 고전을 번역해서 생계를 이을 정도가 되어 본의 아니게 ‘전업 작가’가 된다. 그는 영국문학사에서 18세 중후반을 대표하는 시인 또는 비평가로서 유명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그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이끈 시대를 앞선 인물이다. 이처럼 인문학 열풍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다시 『세계문학 브런치』로 돌아가자. 저자는 호머(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아』를 시작으로 단테와 괴테, 장르문학, 셰익스피어, 근대소설, 세계문학의 악동들, 시(poetry)를 메인 텍스트로 삼아 세계문학(주로 서양문학)을 시공간적으로 종횡한다. 그리고 메인 텍스트에서 파생되는 작가와 작품을 곁들인다. 저자 말을 그대로 옮기면 원전에 “토핑”을 한다. 각 장(chapter)마다 너무나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하기 때문에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첫 번째 장만 간단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저자는 일단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메인 텍스트로 삼아 트로이 전쟁에 대한 원인과 경과를 자세히 전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와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을 통해 트로이 전쟁 후일담까지 전한다. 즉 트로이 전쟁 후 트로이 진영과 그리스 진영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자세하게 풀어 놓는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에 대한 투키디데스와 헤로도토스의 역사적 해석,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비평까지 곁들인다. 마지막으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현대적 변용으로 장을 정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호머에 대한 경의와 함께 각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독후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독서와 해석, 판단이라는 숙제를 남긴다. 두 번째 장에서는 영혼의 순례로서의 『신곡』과 악마와의 거래 장부로서 『파우스트』를 병치시키며 ‘신과 악마’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롭게 변주한다. 그 다음 장에서는 추리 소설, 보물 찾기, 과학 소설 등 비교적 가벼운 ‘장르 문학’을 다룬다. 하지만 저자는 “추리 소설이 인문학 고전의 반열에 들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기습 공격한다. 이 장에서는 에드가 앨런 포, 아서 코넌 도일, 애거사 크리스티, 대실 해밋,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줄 베른, H. G. 웰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수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는데,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너무나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은 그들의 소설을 ‘장르 문학’으로 규정하며 ‘본격 문학’ 또는 ‘순수 문학’과 대비한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추리 소설, 과학 소설을 장르 문학이라고 폄하한다. 이런 ‘순수문학 대 장르문학’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은 많이 엷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하다. 예컨대 최근 들어 판타지 문학 또는 아동문학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과연 영문학에서 논의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영문학 정전 모음집인 노튼 앤솔로지에 과연 포함시킬 수 있는지 역시 이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이 장에서 저자는 가볍게 접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학’ 또는 ‘문학성’의 본질이라는 상당히 진지하고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그리고 영리하게도 자신은 슬며시 빠져나온다. 『세계문학 브런치』는 분량으로 보면 셰익스피어, 근대소설, 시 등 나름 진지한 문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너무나 방대하고 이미 너무나 많은 책에서 너무나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넘어가고, 대신 세계문학의 악동들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저자는 풍자, 어두운 마력, 냉소와 독설, 절망이라는 키워드로 이 장을 설명한다. 그리고 각각 세르반테스와 조나선 스위프트, 프란츠 카프카,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을 그 예로 든다. 개인적으로는 모두 흥미롭고 관심이 가는 작가들이지만, 이 중 세르반테스와 스위프트, 그리고 와일드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그 보다 먼저 풍자와 냉소와 독설, 혹은 조롱에 대해 짚고 가자. 풍자나 조롱은 상대방을 비꼬고 놀린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풍자의 경우 풍자되는 대상은 참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시쳇말로 “화내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롱의 경우에는 다르다. 참고 넘어가면 더욱 망신스럽기 때문에 조롱을 당한 사람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지금이 되었든 나중이 되었든 간에, 반드시 복수한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에서 중세 유럽을 오랫동안 옥죄었던 기사도를 풍자한다. 다시 말하면 『돈 키호테』는 “현실과 괴리된 중세적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한참 전에 도래했음을 알리는 근대의 행진곡”이다. 그런데 그 행진곡은 장중하고 위엄 있는 곡조가 아니라 오히려 한편으로는 유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을 준다. 『걸리버 여행기』는 오랫동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아동용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대 영국과 아일랜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롭지만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풍자의 대상은 겉으로는 웃지만 결코 웃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은 더욱 재미있다. 바로 그 점이 풍자의 묘미이자 본령이다. 반면 냉소와 독설, 혹은 조롱은 말하는 사람만 즐겁고 당하는 사람이나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 모두 유쾌하지 않다. 오히려 조롱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 더해진다. 조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오스카 와일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미국 입국을 위해 세관을 통과할 때 세관원이 신고할 물품이 없냐고 묻자, “내 천재성 외에는 신고할 게 없다”고 맹랑하게 말하면서도 표정하나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한 탐미주의의 대표 작가이다. 동시에 그는 경쾌하고도 신랄한 필체로 특히 빅토리아 시대 영국 지배 계급의 도덕적 ․ 사상적 위선을 벗겨 낸 독설가이기도 하다. 와일드의 탐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나오는 헨리 경은 와일드 자신의 모습에 가깝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인생과 세상을 향한 지독한 냉소, 풍자, 조롱, 그리고 허영과 쾌락에 대한 집착 등으로 가득 차 있고, 와일드의 냉소적 인간관, 더 나아가 그의 염세적 세계관을 투영한다. 하지만 와일드는 자신의 허영과 쾌락, 조롱에 대해 참담한 대가를 치른다. 그는 실제로 도리안 그레이를 연상시키는 젊은 남자 알프리드 더글러스에 매혹되어 그와 동성애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전 재산을 잃고 감옥까지 가는 고초를 겪는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인생은 예술을 모방한다”고 믿었던 와일드는 결국 자신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멸시킴으로써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아이러니한 비극 작품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상대방에 대한 냉소와 독설, 혹은 조롱은 결국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세계문학 브런치』의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전문가들이 흔히 정전이라고 부르는, 서구 문학의 기본이자 표준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이미 그 저자들의 시대나 국적을 초월하여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들이니 일단 믿고 보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품질 보증 딱지가 붙어 있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대로 위 서문은 고전 읽기의 이유와 출발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작품에 대해 전문가들 혹은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다고 그 작품이 반드시 훌륭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때로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문학의 정전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읽는 쪽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전에서 출발해 별전, 외전, 혹은 괴전을 읽는 것도 늦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하게 된다. 예컨대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을 때야 비로소 존 쿳시의 『포』나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세계문학 브런치』를 읽었다고 해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든 책을 읽었다고 결코 말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제 단지 고전 읽기라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선 것이다. 혹은 잠깐 멈추었던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인문학의 시작과 끝은 ‘독서’다. 그것도 ‘자기 독서’다. 이 책은 그 점을 일깨워준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유의미하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해석은 당연히 저자와 다를 것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그게 바로 인문학 공부다.
203. 이방인 다시 쓰기 읽기 - 작성자 : 윤정용 (영어영문학과)  | 2017-09-17
인터넷 검색창에 ‘소설 첫 문장’이라고 치면 국내외적으로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이 쭉 뜬다. 그 가운데 국내 소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는 첫 문장은 김훈의 『칼의 노래』(생각의 나무, 2001)의 첫 문장이다. 주지하듯 『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어절로는 불과 4개 밖에 안 되고, 글자 수로는 열 자 남짓한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는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특히 ‘섬마다’에서 ‘마다’라는 조사 하나 때문에 작가의 고민이 더욱 깊었다고 한다. 분명 ‘섬마다’, ‘섬에는’, ‘섬에도’가 주는 느낌이 각기 다르다. 작가의 그런 깊은 고민 때문인지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은 오랫동안 기억된다. 하지만 어떤 소설은 작가의 고민과 사색보다는 날카로운 직감과 본능으로 첫 문장이 시작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를 들 수 있다. 이 문장은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1)의 첫 문장이다. 옮긴이의 말대로,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롤랑 바르트와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많은 평론가들과 작가들은 『이방인』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이방인』은 오늘날 프랑스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문학의 고전 중에 고전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이방인』은 다른 서양 고전과 달리 부피가 얄팍하다. 그럼에도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 그 자체의 애매함, 기이함, 신비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 점이 작품에 변함없이 신선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이방인』은 ‘고전은 늘 새롭게 읽혀야 한다’는 당위에 가장 부합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술한 것처럼 『이방인』의 첫 문장이 직감과 본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소설 전체도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카뮈는 『이방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정확한 계획을 세웠다고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밝혔다. 즉 『이방인』은 ‘부정’(否定)을 표현한 소설 형식으로 처음부터 계획되었다. 그리고 착상, 구상, 집필 과정은 순수한 창작보다는 그의 삶의 궤적과 일치한다. 예컨대 1937년은 카뮈의 삶에서 중요한 해이다. 1937년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젊은 카뮈가 장차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해 그는 첫 번째 아내 시몬과 공산당원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게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자격 시험도 응시할 수 없었다. 그는 폐결핵 치료와 요양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전반에 대한 근본적으로 재반성하고 세계관을 재확립한다. 카뮈의 세계는 삶의 기쁨과 죽음의 전망, 빛과 가난, 왕국과 유적 긍정과 부정 등 ‘안과 겉’의 양면이 언제나 맞물리어 공존하는 세계다. 그는 그 어느 쪽도 은폐하거나 제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일찍부터 삶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어둡고 비극적인 또 다른 면을 뚜렷하게 의식했다. 삶의 종점인 희망 없는 죽음은 그로 하여금 ‘삶의 무의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방인』은 바로 이 허무감의 표현인 동시에 그 허무감에 대한 저항의 결과물이다. 『이방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알제의 선박 중개인 사무실 직원인 뫼르소는 마랑고의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마랑고로 간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감한 그의 태도에 양로원 사람들이 놀란다. 장례식 다음날 그는 해변에서 옛 사무실 동료 마리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 평범하고 무심한 일상에서 그는 어느 날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구가 되는데, 그와의 관계가 그의 삶의 일상적 흐름을 끊는 계기가 된다. 뫼르소는 변심한 아랍인 애인을 벌주려는 레몽의 음모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며칠 후 레몽, 뫼르소, 마리 일행이 레몽의 친구 마송의 초대로 해변으로 놀러갔을 때 그들과 그들을 미행한 레몽 애인의 오빠 일행과 싸움이 벌어진다. 레몽이 다치고 싸움은 끝났으나 뫼르소는 답답한 마음에 혼자 그늘진 샘을 찾아간다. 하지만 샘에는 이미 레몽 애인의 ‘아랍인’ 오빠가 와서 그늘 속에 누워 있다. 팽팽한 대치 속에서 아랍인이 칼을 꺼냈고,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에 눈이 먼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레몽으로부터 빼앗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2부는 뫼르소의 재판과정을 담고 있다. 뫼르소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재판을 관찰 혹은 구경한다. 예심과 본심에서 그에게 주로 쏟아진 질문은 아랍인 살해 경위가 아니라 어머니 장례 태도에 관한 것이다. 종교적·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는 뫼르소의 행동 하나하나가 스캔들을 일으킨다. 사실 당시 프랑스인의 아랍인 살해는 프랑스 법정에서는 치명적인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살해한 아랍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단지 아랍인으로만 지칭될 뿐이다. 뫼르소가 법정의 질문에 요령 있게 답했다면, 아니 종교적 · 도덕적 관례를 따랐다면 그는 사형선고를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법정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즉 거짓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사형을 선고받는다. 뫼르소는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인간이기에 극한의 공포를 느꼈지만, 그는 마침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방인』은 구조적으로 주인공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를 중심으로 1부와 2부가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1부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해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로 끝난다면, 2부는 뫼르소가 아랍인의 살해에 대해,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적 · 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사형 판결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많은 이들이 『이방인』이 주인공 뫼르소의 죽음으로 끝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작품 속에서 그의 사형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무모한 상상을 한 번 해 본다. 어쩌면 무례한 상상일 수도 있다. 만일 『이방인』의 뫼르소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신이 종교적 · 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회개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서 보았듯이, 당시 프랑스에서는 식민지인을 살해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니었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가 종교적 · 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그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는 철회되거나 아니면 형 집행이 유예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당방위로 무혐의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카멜 다우드는 『뫼르소, 살인사건』(조현실 옮김, 문예출판사, 2017)에서 『이방인』의 ‘뫼르소가 죽지았았다면’이라는 무모하고 무례한 상상을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방인』의 첫 문장을 패러디해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로 시작한다.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자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 다시 쓰기/읽기’ 혹은 ‘『이방인』 되받아 쓰기’로 규정가능하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뫼르소, 살인사건』은 작가 카멜 다우드의 첫 장편소설로서 출간 즉시 프랑스와 알제리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지어 이 작품은 연극으로 각색되어 아비뇽 축제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뫼르소, 살인사건』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매일 저녁 70대 후반의 한 노인이 바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술에 취하면 두서없이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의 고뇌, 알제리 독립 전쟁(1954-1962)의 정황, 졸지에 형을 잃은 소년과 아들을 잃은 엄마의 처절한 투쟁과 허망한 좌절, 독립 이후의 알제리에 대한 치열한 비판, 종교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한 젊은이가 그의 옆에서 그의 부서진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노인은 뫼르소라는 프랑스인에 의해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 하룬이다. 뫼르소는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갑작스런 심경변화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석방되었다. 사실 그가 석방된 이유는 아랍인 살해에 대해 뉘우쳤기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의 종교적 · 도덕적 관례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뉘우쳤기 때문이다. 석방 뒤 뫼르소는 ‘뻔뻔하게도’ 자신의 범죄 이야기를 『타인』(『이방인』의 패러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뫼르소에 대한 분노와 형에 대한 연민은 하룬을 평생토록 지배해온 상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분노와 연민을 잊기 위해 늘 술에 취해 있다. 하룬의 이야기를 듣는 이는 뫼르소의 『타인』에 대해 논문 준비를 하느라 자료 수집 차 멀리 프랑스에서 알제리 오랑까지 온 대학원생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늘 갈구해온 하룬은 그 프랑스 청년에게 다 털어놓음으로써 형의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말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명확하지 않다. 내용도 불분명하다. 그가 말하는 목적은 한 가지다. “권태와 눈부신 햇빛과 찝찔한 소금기” 때문에 살해된 형, 이름 한번 불려 지지 않고 단지 ‘아랍인’으로 호명된 그의 형을 제대로 된 이름, 즉 “무싸”로 호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하여 그에게 집착하던 하룬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분노하던 뫼르소와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뫼르소가 자기 조국이 아닌 땅에서 고아처럼 떠도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하룬 역시 죽은 형이 살아오기만을 바라는 엄마 곁에서 살았어도 죽은 듯 지내야만 했다. 뫼르소가 대낮에 햇빛 아래서 ‘아랍인’을 살해했듯이, 하룬은 한 밤중에 달빛 아래서 ‘프랑스인’을 똑 같이 살해한다. 또한 뫼르소가 살인 자체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처럼, 하룬은 프랑스인을 죽였다는 살인 행위보다도 프랑스인을 죽인 시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다. 즉 그는 프랑스인을 알제리 독립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죽였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이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뫼르소와 하룬은 똑 같이 종교를 부정하고 ‘자유의지’로 자신의 존재를 책임지겠다고 확고한 태도를 보인다. 『이방인』의 마지막에서 뫼르소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 ‘사형수’로서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포일’(foil)이며 거울이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이 무의미하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방인』은 ‘비극적인 삶의 찬가’다. 『뫼르소, 살인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뫼르소, 살인사건』이 『이방인』의 패러디로 시작했다면 결말은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많은 구경꾼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절망적 환희’로 끝난다. 『뫼르소, 살인사건』은 『이방인』의 속편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룬의 독백은 『이방인』의 구절을 그대로 혹은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한 마디로 작가 카멜 다우드는 『뫼르소, 살인사건』에서 『이방인』을 재문맥화한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궁극적으로 통한다. 예컨대 하룬은 처음에는 뫼르소에게 분노와 증오를 갖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뫼르소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깨닫고 연민 또는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렇다면 작가 “카멜 다우드도 알베르 카뮈에 대해 야속함과 동시에 찬탄에 가까운 존경심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는 옮긴이의 설명에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